영화티켓을 버리다.




이사를 대비해서 시간날 때 마다 집을 조금씩 정리하고 있다. 이 집에 4년 이상 살았던거라 쌓인 물건도, 낡은 물건도 많아서. 고등학교 때 부터 쓰던 서랍장은 정말 이제 곧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거라, 아마도 이사갈 땐 버리지 싶다. 그 서랍 안을 정리하며 필요없는 종이조각들을 버리다보니, 옆에 영화티켓 한 뭉치가 연도별로 봉투에 담겨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제 영화티켓을 아예 주지 않는 극장들이 늘고 있다. 모바일 티켓이라는 게 있고, 인터넷 예매 후 프린트로 슥 출력하면 그것도 그대로 티켓이 된다. 극장에서 기기를 통해 티켓을 출력하면 바코드가 찍힌 영수증 형태의 영화티켓이 나온다. 저 사진 속의 영화티켓. 우리가 영화티켓 하면 떠올리는 종이조각. 아마도 곧 사라지지 않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티켓을 모으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나도 영화티켓을 모았었다. 올해 마지막으로 본 영화까지 차곡차곡. 영화티켓은 왜 모을까? 몇날 몇시 어디 극장에서 무슨 영화를 보았는지 기록해둔 종이조각일 뿐인데. 우선은 추억과 기억을 담고 있기 때문이겠지? 내가 무슨 영화를 봤었는지에 대한 기록보다는 그 몇날 몇시에 있었던 기억들이 떠오르기 마련이니까. 이건 남자친구랑 처음 같이 봤던 영화였고, 이 영화를 보면서는 지갑을 잃어버린 것 같아 영화에 전혀 집중하지 못했고, 이 영화는 누구랑 같이 보기로 했는데 약속이 깨져서 혼자 보았었고, 이 영화를 같이 봤을 때만 해도 그 친구랑은 사이가 좋았었는데, 기타등등. 그 다음은 묵직한 영화티켓 뭉치의 물리적인 그 자체도 이유가 될까. ‘내가 영화를 이만큼이나 많이 보았네’ 하는 뿌듯함. 오랜 세월 조금씩 쌓아온 무언가의 물리적 형태는 어쨌든 가치가 있다는 믿음. 그런거?

나도 누구에게 지지 않을 만큼 기록하고 보관하고 저장해두는 것을 좋아한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것 때문이라면 굳이 영화티켓이라는 형태를 보관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몇날 몇시 어디 극장에서 무슨 영화를 보았는지에 대한 기록만 따로 텍스트로 보관해 두면 된다. 물리적으로 자리를 차지하던 데이터들을 디지털로 대체시키면, 후에 검색이나 관리도 훨씬 편해진다. 후자 때문이라면, 글쎄, 이제 아날로그적인 ‘쌓음’ 보단 이젠 디지털적인 ‘쌓음’이 가능해진 시대, 그리고 그것이 가치를 가지는 시대이지 않은가. 지금도 수십만장이 발행되고 있을 영화티켓이 어떤 시대적 가치와 희소성을 가진 유물이 될 리는 만무하고.

그래서 에버노트에 영화 본 날과 극장이름과 영화제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른 작업은 없었다. 2006 이라는 이름의 노트를 만들고, 2006년에 본 영화들을 쭉 날짜순대로 타이핑했다. 몇월 며칠, 영화제목, 극장이름. 10년치를 정리하는데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2008년부터는 다이어리 마지막장에 아예 그런 페이지를 만들어 두었기 때문에 그대로 옮겨 쓰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이 기록과 영화티켓 자체를 대치시키는데엔 분명히 무리가 있지만

그러고 나서 영화티켓을 버렸다. 모두.
앞으로도 영화티켓을 모으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약간의 아쉬움이 생겼던 것은 사실이다. 버려진 영화티켓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하지만, ‘디지털화 되지 않은 자료’들을 버거워하는 내 자신의 변한 모습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하다. 필름 카메라의 결과물들도 프린트 되지 못한 채 필름스캔 데이터들만 하드디스크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다이어리도 에버노트와 구글캘린더로 100% 대체되었다. 무엇이 얼마나 더 변하려나? 누구보다 빨리 변화해서 앞장서고 싶어하는 마음도 있으면서 지나간 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도 쉽지는 않다.



    • gSPd_
    • December 17th, 2010

    저도 영화표가 이상한 쪽지로 바뀐뒤로.. 영 모이질 않네요 영수증처럼 매번 버려지는듯!

      • Joplin
      • December 19th, 2010

      그쵸- 흐음. 기분의 문제인가.
      그나저나 영화표고 뭐고, 요즘 영화 너무 안 봐서 큰일이에요. 영화들에게 쫓기고 있어요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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