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쓰릴 미> – 오종혁/이지훈 cast

뮤지컬 <쓰릴 미>
출연 : 오종혁 (나, 네이슨), 이지훈 (그, 리처드)
장소 : 더 스테이지
2007년 처음 뮤지컬 <쓰릴 미>를 보았던 이후, 나도 <쓰릴 미>의 팬이 되었다.
모노톤의 심플한 무대와 정장을 갖춰 입은 두 남자 배우. 피아노가 홀로 연주되기 시작하고, 무겁고 뜨겁지만 건조하고 흡인력있는 그 이야기가 막을 열면 약속한 듯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우선은 그 음악만으로도 절반 이상의 만족이다. 나머지는 리처드와 네이슨을 연기할 배우들이 채워나간다. 매년 대사와 리처드의 태도가 조금씩 달라지는 건 연출의 몫이다. 2007년의 <쓰릴 미>와 2010년의 <쓰릴 미>는 분명 다르다. 로렌츠의 각인 이론에 나오는 오리들처럼, 내겐 처음 보았던 그 날의 <쓰릴 미>가 기준이 되어 버렸고, 그 날의 감정을 뛰어넘는 <쓰릴 미>를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몇 번의 <쓰릴 미>를 더 보더라도 나는 처음 <쓰릴 미>와 그 공연을 비교하게 될 것이고 약간의 아쉬움을 필연적으로 느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쓰릴 미>는 <쓰릴 미>로서 독창적이다. <쓰릴 미>외의 그 어떤 공연과도 비슷하다고 말할 수 없고, 비교해서 말하기가 힘들다.
매년 그 해의 <쓰릴 미>를 1회 이상 보아 왔지만, 2009 시즌은 보지 못했고, 2010 시즌은 망설여졌다. 2010 시즌의 <쓰릴 미>는 2007년 <쓰릴 미>로 스타가 되고 매진 행렬에 앞장 섰던 김무열 리처드와 최재웅 네이슨의 캐스트로 화제가 되었었다. 굉장한 팬서비스라고 생각했지만 티켓을 구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그들은 내 체감상, 무척 짧은 기간동안 무대에 섰다 내려갔다. 그들을 보지 못한 2010 시즌은 허전하고 아쉬웠다. 새로운 나와 그를 보는 건 괜히 더 큰 위험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이지훈 리처드와 오종혁 네이슨이 추가로 캐스팅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이돌 출신 뮤지컬 배우들은 아무리 잘 한다고 해도 거부감이 일었기 때문에, 더욱 공연을 보기가 망설여졌다. 
2009 시즌을 건너 뛴, <쓰릴 미> 자체에 대한 갈증이 높아질 즈음 이지훈 리처드와 오종혁 네이슨을 만났다. 일명 ‘오이페어’. 큰 기대를 하지 않았고, 음악이 주는 절반 이상의 만족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슬쩍 들여다 본 뮤지컬 리뷰 게시판에서는 오이페어에 대한 좋은 감상이 의외로(!) 많았다. 그렇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 딱 그 정도였다.
지금까지 네 명의 네이슨을 직접 본 거 같은데, 그 중에서도 오종혁은 의외의 발견으로 기록할 만한 네이슨이었다. 우려했던 연기력에 대한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고, 자기 캐릭터에 꼭 맞는 네이슨을 오종혁은 무척 잘 연기해 냈다. 50대와 20대를 번갈아 말하는 것도 어색하지 않았고, 노래할 때의 목소리도 무척 좋았다. 노래도 잘 하고. 정말. 이렇게 노래하는 사람이었는지 처음 알았다고 생각 될 정도로 말이지. 아름답고 여리지만 그늘이 있는 네이슨. 이지훈의 리처드도 괜찮았다. 전체적인 태도, 자세, 표정, 대사의 톤도 그럭저럭 좋았는데. 일단 애초에 별로 못되게 생기지도 않았고, 목소리가 너무 소프트해서 아쉬움이 있더라. 좀 더 강하고 악한 모습을 보여줬음 좋았을텐데, 아마도 이지훈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악함’ 이 그렇게 크지가 않은 것 같았다. 이지훈의 리처드는 좀 도도하고 까칠하고 자존심 센 리처드였다. (네이슨을 하면 어땠을까?) 좀 더 못되게 소리지르고 막 대하라고! 속으로 계속 그런 말을 해 댔다. 그래야 뒤에 오는 카타르시스가 좀 더 크단 말이다.
하지만 오종혁이 워낙에 작고 여린 네이슨을 연기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밸런스가 꽤 좋았다. 목소리도 대사도 비주얼도 서로서로 잘 어울리는. <쓰릴 미>에서는 그것도 무척 중요한 요소더라. 단 두명만 나오는 뮤지컬이다보니. 과거 너무 나이차이 나 보이는 리처드 네이슨은 보기 부담스러운 부분들이 있더라고. 이지훈이 아닌 김무열과 오종혁의 <쓰릴 미>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도 조금 해 봤지만, 뭐, 이대로도 좋았다, 충분히. 한 번 더 보라면, 기꺼이 볼 수 있을 정도로.
대사의 디테일에 대해 말하자면. 내가 좋아했던 몇몇 대사들이 부활해서 참 좋았지만 몇몇 대사들은 뉘앙스가 잘 안 살아서 아쉬웠다. 이것도 어디까지나 일부는 ‘각인 이론’에 기인한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동성애 코드의 수위는 전체적으로 살짝 높아진 느낌. 이렇게 스킨쉽과 키스신이 여러번이었나? 남자 관객들은 조금 당황하는 느낌이. 마지막에 인사를 하고 들어갈 때 실루엣으로 보여주던 키스신이 제일 보기 예쁘더라만은. 
그밖에
- 일본인 관객들이 무척 많아서 놀랐는데, 이지훈 때문인 것 같다. 놀랍.
- 배심원석은 배우들의 모습을 완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데, 너무 가까워서 부담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팬들은 좋겠지?
- 공연장이었던 신촌 더 스테이지, 처음이었는데 괜찮았다. 집과 가깝다는 게 가장 큰 장점. 소극장은 대학로, 대극장은 역삼or잠실이 대부분이었는데 신촌이라니! 신촌이라니. 앞으로도 재밌는 공연이 많이 있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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