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


  라디오는 외로운 사람들의 물건이었다. 오로지 혼자인 밤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준다. 인간이 발명한 모든 물건이 그런 위안을 위해 존재했다. 웃고 울며 텔레비전을 보다 보면 화면 속의 사람들로 인해 외로움이 사라진다. 귀에 바짝 붙인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사람의 간격을 믿을 수 없을 만큼 바짝 좁혀왔다. 자전거, 자동차, 기차, 비행기, 더욱 더 빨라지는 교통수단은 그리운 이들을 향해 달려가는 속도에 가속도를 붙이며 달려 나간다. 다른 이를 향해, 혼자가 아님을 확인해 주는 누군가를 향해서. 그러니까 모두가 인간의 외로움을 이용해 사업을 하고 있었다. 자신만의 육체에 갇혀서 결코 정체성을 넘어설 수 없는 외로운 인간에게 위안을 주는 사업이었다. 어쩌면 문명의 발전은 인간의 외로움을 넘어서기 위해 끝없이 개속되어 왔는지도 몰랐다. 그런 면에서 보면 문명의 발전과 함께 인간이 더욱 외로워졋다는 흔한 명제는 우스꽝스러운 모순이었다.
 
- 김주영,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 <U, ROB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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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단편집 <U, ROBOT>을 읽는 중이다. 굉장히 내 취향의 글들로 가득 차 있는데.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SF를 좋아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하나같이 외로움의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긴 나만 해도 그렇다. 우주는 너무 넓고 나는 너무 작고 하찮다. 우주가 너무 넓어서 외롭다는 <오디션> 황보래용의 대사도 귓가에 어른거린다. 영화 <AI>도. 제일 많이 생각난 건 이시영의 단편집 <새빨간 거짓말>. 주인공들은 모두 외로워하는 동시에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공간은 문명의 이기를 이용해 채우려고 애쓰지만 결국 남는 건 더 큰 공허함과 상처, 뭐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

사람과 사람이 체온을 맞대고 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이고 축복일까. 하지만 그 체온마저도 사실은 조작된 것일 수 있다는 불안함.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이 더 불안할지, 이 체온은 프로그래밍 된, 진짜가 아닌 가짜라는 것이 더 불안할지. 어차피 다 마찬가지 아닌가. 불안함의 포커스가 다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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