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출연 : 홍광호 (팬텀), 최현주 (크리스틴), 정상윤 (라울), 김봉환 (피르맹), 서영주 (앙드레), 윤이나 (칼롯타), 진용국 (피앙지), 김기순 (마담 지리), 정단영 (맥 지리)
장소 : 샤롯데씨어터
제작 : 설앤컴퍼니
0. 전에 이글루스 블로그는 '공연+카페' 블로그였는데. 요샌 카페도 가는 데만 가고. 공연은 보는 횟수가 많이 줄었다. 그 이유라 함은 경제적인 압박이 가장 큰 이유인데. 한 달에 두 번은 챙겨 보던 공연 관람 횟수가 점점 줄어들다보니 가끔 공연을 봐도 리뷰 쓰기를 주저하게 되더라. 블로그 방문자 수가 적기 때문은 아니다. 사실 내가 쓰는 글의 가장 열혈 독자는 바로 나 자신이거든. (나는 내가 써둔 글 다시 읽고 보고 하면서 글을 쓰던 그 순간을 떠올리고 좋아하고 그런다. 변태 -_-;;)
1. <오페라의 유령>은 과거에 영화로만 봤었고, 관람한 적이 없어서, 제작이 알려졌던 2009년 초부터 무척이나 기대했던 작품이었다. 오디션 현장의 소식은 '팬텀을 누구로 할지 큰일' 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정말 팬텀은 누가 될까. 홍광호가 하면 좋겠다, 하고 바람만 가졌다. 홍광호는 그 미친 가창력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긴 하지만 아직 신인이라고 불릴 만한 위치였다. 크리스틴은 김소현이 아닌 누군가가 나타나 주길. 라울은 사실 적당히 누구든 할 수 있지 않나 싶었고.
정상윤/홍광호 라울 캐스트가 발표되었을 때 기대했던 대로,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홍광호의 음성은 라울의 이미지와는 잘 어울리지만, 넘버가 몇 곡 없는 라울 캐릭터에 홍광호의 가창력이 아깝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팬텀은 윤영석과 양준모. 윤영석은 초대 팬텀이었고 그것으로 인기를 얻었으니 안전한 배우라고 생각했고, 양준모는 박수를 딱 쳤다. 팬텀에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적당히 큰 체격과 풍부한 성량, 그리고 외모도 또한 팬텀에 적절하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양준모 팬텀을 미처 못 챙겨 본 건 좀 아쉽다.
하지만 1년이 다 되도록 <오페라의 유령> 보기를 망설인 까닭에는 위에서 밝힌 경제적인 이유와 더불어 사전에 캐스팅 스케줄이 공개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좀 마음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결코 싸다고 말할 수 없는, 10만원 이상의 티켓가격을 지불하고 내가 선택한 배우를 보지 못한다는 건 너무 억울했다. 한 쪽에 치우치는 팬텀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 경우엔 두 팬텀을 다 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불리하다. 어쨌거나 제작사측에서도 나름의 이유가 있고, 장단점이 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지극히 관객의 시점에서.
본다 본다 하면서도 자꾸 미뤄지다 결국 홍광호가 팬텀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또 이런저런 이유로 잠시 하차했다는 소식도 듣고, 캐스팅 사전 공개를 시작했다는 얘기도 들리면서,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이제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지난 주,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예매 했다. 드디어.
2. 한 마디로 말하자면 공연은 좋았다. 만족스러웠다. 음악이나 시나리오는 워낙에 잘 알려져 있고 검증된 거라 내가 코멘트할 게 없지. 그 밖의 무대 연출이나, 공연장의 조건, 캐스트, 앙상블, 배우들간의 전체적인 조화가 나머지 부분을 채워가는 건데. 근데 공연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겠나. 어떤날은 120%의 놀라운 결과물을 보일 때도 있고, 어떤 날은 아쉽게도 80-90% 정도일 때도 있고. 90~120% 사이만 잘 유지해도 기복 없는 좋은 공연이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본 그 날의 <오페라의 유령>은 90% 정도의 기량이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이었다.
굵직한 무대 연출들이나 의상, 음악(그리고 음향)은 일단 매우 만족. 샹들리에가 너무 천천히 추락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그걸 제외한다면 딱히 흠잡고 싶은 장면은 없었다. 마술 장면들도 어색함 없고. 배우들도 대부분 각자 캐릭터에 잘 어울렸다. 노래는 잘하지만 연기는 조금... 이라는 평이 대세인(흑흑) 홍광호의 경우에도, 팬텀은 대사 없이 90% 이상이 노래! 곡 해석이 너무 뛰어나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했고 감동적. 게다가 몸을 쓰는 부분들도 어색한 부분 없이 완전 만족. 일단 노래가 되니까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어도 상쇄되는 부분이 많은 배우인데, 팬텀의 경우엔 그 '조금 아쉬움' 이 느껴질만한 구석도 적어서 적역이었다고 생각된다. 너무 잘생겨서는 안 된다는 조건까지도 부합하잖아.
크리스틴의 최현주는 듣던대로 무척 뛰어난 배우였다. 일단 노래를 정말 참 잘해. 김소현의 크리스틴에 질렸을 사람들에겐 단비같은 크리스틴이었다. 앞으로도 무대에서 계속 보고 싶고, 다른 모습을 연기하는 것도 보고 싶은데, 극단 시키 소속이라 팬텀이 끝나면 일본으로 떠난다는 얘기가 있더라. 나야 키크고 늘씬한 여성들을 좋아하지만, 팬텀이 그렇게 큰 키가 아니다보니 크리스틴과 팬텀이 키 차이가 별로 안나 ㅠㅠ 다행히 라울의 정상윤이 큰 키라 다행이지만 이 사람은 왜 반듯하게 걷질 않는거야 ㅠㅠ 노래하는 정상윤은 꽤 좋다. 노래도 잘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나 태도가 '정의롭고 반듯한 부자집 청년' 과는 약간의 거리가 느껴져서 재미있었다. 시종일관 '오~ 크리스틴 좀 이쁜데?' 하는 듯한(ㅎㅎㅎ). All I ask you 에서 크리스틴을 안심시키는 장면에서도 뭔가 진심이라기보다는 크리스틴이랑 뽀뽀 좀 하려고 감언이설 하는 듯한(... 미안해요 정배우). 하여튼 그래서 재미있었다. ;;;;
윤이나의 칼롯타는, 칼롯타의 분위기를 너무 살려줘서 좋았고. 공연 내에서 역에 가장 최고로 잘 소화해 낸 배우를 꼽는다면 바로 칼롯타일 듯. 진용국의 피앙지는 너무 담백했다. 좀 더 뚱뚱하고 느끼하고 무게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진용국씨는 신부님 이미지라서. 마담 지리도 좋았는데 맥 지리는 너무 존재감 없고. 하긴 맥 지리는 원래 좀 존재감 없나.
3. 여러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장면은. 라울과 크리스틴의 캐미컬이 상대적으로 제대로 표현되질 않아서, 그리고 내가 팬텀을 좋아하니까, 극단적으로 팬텀을 편들고 싶더라. 라울이 크리스틴을 찾아 헤매며 지하 미궁까지 올만큼 사랑했는지 약간의 의문이 드는 느낌. 반면 크리스틴과 팬텀의 관계는 마지막에 가선 제대로 표현되어서 좋았고 동시에 슬펐다. 공연에서 보여진 이미지 대로라면, 크리스틴은 라울을 뿌리치고 팬텀에게 걍 안겼어야 (...쿨럭쿨럭)
다시 보고 싶은 장면은 Masquerade 그리고 묘지에서 팬텀이 숨어 노래하는 장면. 홍광호의 노래부르는 톤이 너무 좋아서 순간적으로 숨을 멈추게 되더라는. Past the point of no return 의 슬픈 느낌도 좋았는데. 한국 cast의 ost를 구입했는데, 홍광호가 라울일 때 녹음한거라 홍광호 팬텀 노래가 없어 너무 아쉽다.
진작에 봤어야 할 공연이었다. 그럼 한 달에 한 번씩은 보러 갔을 텐데. 다음에 다시 <오페라의 유령>이 무대에 오른다면, 더 나은 홍광호의 팬텀을 볼 수 있겠지. 이번 <오페라의 유령>은 8년만이었는데, 다음엔 그 반보다 짧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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