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느끼는 전자책의 필요성

사람들은 무엇이 책의 본질이라고 생각할까. 책이 주는 감동 혹은 메세지? 교훈? 지식?

출판기술의 역사까지 되짚어 가며 설명할 필요도 없다. 책은 사람의 지식활동에 가장 중요하며, 가장 오래된 매체였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의 지식활동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매체는 비단 책 뿐만이 아니다. 책으로 쓰여져 전달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가 아는 것들을 공유하며, 자신이 알고싶어하는 것을 먼저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다. 브라우저만 열고, 검색어만 입력하면 블로그라는 이름의 개인 미디어와 소셜 Q&A 플랫폼이 넘쳐난다. 정보습득의 격차는 경제력 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려는 개인의 의지’나 ‘정보의 바다 가운데서 올바른 정보를 선별해 낼 수 있는 역량’에 따라서도 벌어지고 만다. 이전에 비해 사람들의 독서량은 분명히 하락하고 있을 것이다. 도서 판매량 또한 마찬가지. 굳이 통계를 찾아볼 것도 없다. 모두가 느끼고 있을테니까.

도서 판매량의 하락에 대해서는 스캔본 등의 불법 복제도 영향을 미쳤을거라고 한다. 하지만 난 그보다 사람들의 지식활동 형태 자체가 바뀌었다는 데에 더 포커스를 맞추고 싶다. 책이라는 건 한템포 늦은 정보일 수 밖에 없다. 기획되고 인쇄되고 유통되는 시간동안 정보는 끊임없이 순환되고 리프레쉬된다. 매일 인터넷 브라우저를 들여다보며 사는 사람들은 그걸 모르지 않는다. 책으로 공부하는 페이스북 마케팅? 그런 책은 존재만으로 아이러니 그 자체일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꾸준히 책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많다. 고전 혹은 현대문학의 경우 종이에 인쇄되서 묶인 책이라는 미디어가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는 생각도 든다. 나 역시도 책을 그런 책들을 꾸준히 구매 해 왔다. 하지만 책을 구매하면서도 나 자신의 한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책값이 비싸다거나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한 게 아니다. 책을 구입하는 건 ‘책이 가지고 있는 내용’을 구입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책이 내 집 안에 차지할 ‘물리적인 공간’에 대해서도 비용을 지불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마치 도서관처럼 책이 빼곡한 서재에 대한 상상.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머리속에 그려 봤을 로망이다. 나도 혼자 사는 사람 치고는 적지않은 책을 가지고 있다. 꾸준히 솎아내고 있지만 구입하는 속도와 겨우 균형이 맞는 정도이다. 지금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뭐가 문제야? 더 큰 집으로 이사가면 되잖아? 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냥 작은 집도 구하기 힘든 세상이지 않은가. 1인 가구로서 그 한계점은 더욱 명확하다. 사람마다 ‘공간에 대한’ 우선순위와 기회비용이 다르겠지만, 나는 지금 여기서 더 이상 책에 대해 공간을 할애할 생각은 없다. 이미 이사할 때 마다 적지 않은 추가비용을 지불할 정도의 책을 갖고 있고, 이사할 때 책장을 놓을 공간이 어떤지를 살펴봐야 한다. 내 책장이 들어가는지 천장의 높이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그냥 작은 원룸에서 살 수도 없다. 난 정말 내가 소유한 책에 대해 충분히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도서관처럼 책이 빼곡한 서재에 대한 상상이 아닌, 전자책에 대한 상상을 한다. 전자 책 디바이스를 켜면 그 안에 내가 구입한 책들이 모두 들어와 있는 상상. 그만큼 더 넓고 심플한 방을 꾸밀 수 있다. 책을 한 권 더 살 때 조차 택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오프라인 서점에서 충동구매한 책들을 끙끙대며 집까지 들고 올 필요도 없다. 두꺼운 스티브 잡스 자서전을 보며, 저 책은 집에서만 읽어야겠다고 지레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읽던 책을 어디까지 읽었는지 표시하기 위해 쪽수를 외우거나, 책장을 접어놓거나, 책갈피 대용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된다. 불이 나거나 수해가 발생했을 때 조차, 내 디바이스만 멀쩡하다면, 아니 내 account만 멀쩡하다면 책들은 모두 멀쩡히 남아있을 수 있다. 더이상 얼마나 더 좋을 수 있는가?

킨들과 아마존과 전자책은. 내가 이상적이라고 믿는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었다. 킨들이 나오고 얼마 안되어 ‘영어로 된 책에 거부감이 없는 사람들’은 킨들은 신세계라며 날 자극했다. 유일한 단점은 ‘책 지름신’이 좀 더 가까이 온 거라나. 영어로 된 책을 맘껏 읽을 수 없는 나는 부러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아, 나는 왜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지 못해서 영어로 된 소설책 하나 제대로 읽지 못하는가. 아니 나는 왜 한국어를 하는 나라에 태어났는가. 내가 사는 곳이 미국일 필요도 없다. 그냥 영어가 모국어였다면 나도 킨들과 아마존이라는 신세계에 진작 발을 담그고있었을텐데.

내가 이렇게 킨들과 전자책을 부럽다는 듯 얘기하면, 반드시! 분명히!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어디선가 나타난다. 난 그래도 종이로 된 책이 좋아요. 책은 서재에 꽂혀 있어야 맛이죠. 전자책은 운치도 없고. 책을 읽는 것 같지도 않고. 정말 미안한 얘기지만,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책의 가치와 다른 쪽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추고 있거나 – 책이 주는 기능은 책의 내용아닌, 책 그 자체의 존재라는 말도 있으니까. 책은 책꽂이에 꽂혀 있는 것 만으로도 기능한다는 - 바로 세개 위의 문단에서 말한, 책을 많이 소유했을 때에 접하게 되는 한계에 대해 전혀 한계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책이 어떤 형태와 무게를 가지고 있던 상관 없다. 사실 어떤 표지를 하고 있는지도 상관하지 않는다. 책꽂이에 꽂혀 있지 않아도 되고, 아니 꽂혀 있지 않는 편이 낫다. 그저 그 안에 글씨가 제대로 쓰여 있으면 된다. 빠진 페이지가 없으면 그만이다. 읽고싶을 때 꺼내서 읽을 수 있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빌리는 책은 한계가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시 꺼내서 읽고 싶은 맘이 들지 않을 것 같은 책 – 내가 ‘소유’할 이유가 없는 책 – 은 그냥 팔아버리는 것 뿐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 ‘소유’하고 있는 책은, 내가 다시 꺼내서 자주 읽는 책들과, 아직 읽지 않은 책들과, 팔고 싶은데 팔리지 않는 책들로 분류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나 같지는 않을 것이다. 책의 표지가 예쁘니까, 종이 질이 마음에 들어서, 책에 줄 긋고 메모를 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기 때문에, 전자책이 아닌 ‘종이로 된 책’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몇몇 책들은 그 물리적인 형태나 껍데기가 맘에 든다. 하지만 그보단 그 반대의 경우가 훨씬 많다. 내가 킨들과 아마존과 전자책의 나라에 살고 있고 그들의 언어가 모국어라고 해도 앞에서 언급한 이유들로 몇 권은 ‘종이로 된 책’을 구매할지 모른다. 하지만 전자책을 구메하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고 내 책장의 볼륨은 반으로 줄어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정말 안타깝지만, 한국에서의 전자책 시장의 활성화에 대한 전망은 밝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책을 열심히 읽는 사람들은 굉장히 한정되어 있고, 그 가운데 전자책에 대한 니즈가 있는 사람 – 나같은 사람 – 도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맷과 디바이스는 표준화된 게 없다. 출판사와 유통사 간의 힘겨루기는 시끄러운 잡음을 내며 계속해서 진행형이다. 어쨌든 나는 계속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영어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실력이 되도록 영어공부도 더 열심히 해야되다며 진지하게 스스로를 다그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원하는 건 ’전망이 밝지 않아’ 라고 말했던 내 말을 보란듯이 뒤짚을 혁명과도 같은 사건이 일어나는 것. 난 정말 진심으로 기뼈해 줄 자신이 있다.